[베이비뉴스]살아남은 자의 트라우마, 보듬을 대책 있나요

작성자
한국어린이안전재단
작성일
2014-08-18 11:17
조회
315
어린이안전재단, '어린이 트라우마 지원사업' 추진
9월 19일 서울시민청 태평홀서 첫 컨퍼런스 개최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에게 잊히겠죠. 하지만 당사자, 가족들이 겪어야 할 후폭풍은 시간이 흐르고, 세월이 바뀌어도 잠잠해지지 않습니다.”
14년 전인 2000년 7월 부일외고 수학여행 참사에서 살아나온 김은진(30) 씨의 말이다. 고등학교 1학년 학생들을 태운 관광버스 4대는 경북 김천시 경부고속도로에서 승용차 등 차량 5대와 연쇄 추돌했고, 사고로 버스에 탔던 18명이 숨지고 97명이 다쳤다. 이 참사는 우리들의 기억 저편으로 잊혀져갔다. 그리고 14년이 지났다. 그러나 살아남은 당사자, 그리고 가족들은 여전히 고통 속에서 허덕이고 있다. 아프다. 김 씨는 “사건사고가 잊힌다고 당사자도 괜찮을 거라 어림짐작하지 말아주세요. 여전히 아파합니다”고 호소했다.
사건, 사고를 겪은 사람들의 가슴은 활화산과 같다. 사고 당시의 아픈 기억이 언제 터져 나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화산이 모든 것을 잠식해버리듯 터져 나온 그날의 기억은 사고 당사자의 인생을 흔들어놓는다. 사고의 기억을 꾸준히 보듬어주고 치료해줘야 할 이유다. 하지만 사고 당사자에 대한 관심은 서서히 사라져간다.
우리 모두 잊지 않을 것만 같았던 지난 4월 16일 발생한 세월호 참사. 그날의 기억, 그리고 피해자들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은 서서히 멀어져가고 있다. 겨우 살아남은 생존자와 유가족들은 더 큰 고통 속에 살아간다. 생존자는 ‘왜 나만 살았나’하는 후회와 미안함에, 유가족들은 자식들을 잃은 슬픔에 잠긴다.
재난, 화재, 성폭력, 신체학대, 교통사고 등 충격적인 사건, 사고를 겪으면서 나타나는 정신적 외상인 트라우마는 전 생애에 걸쳐 나타나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지속적인 관리와 도움이 필요한 영역이다. 특히 인지능력이나 표현능력이 발달되지 않은 어린이는 사건, 사고에 대한 왜곡현상이 더욱 심하게 이뤄질 수 있어, 보다 빠르고 생애 전반에 걸친 심리적인 치료와 관심이 절실하다. 즉, 성인이 되기까지 관리와 보살핌이 계속돼야 한다는 말이다.


세월호 참사는 우리 사회에 많은 과제를 던져주고 있다. 한국어린이안전재단을 중심으로 어린이 트라우마 지원사업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시작되는 것도 바로 세월호 참사가 던져준 교훈 덕분이다. 이기태 기자 likitae@ibabynews.com ⓒ베이비뉴스

이에 한국어린이안전재단(대표 고석, 이하 재단)은 사건, 사고를 겪은 어린이와 가족들의 정신적인 고통을 생애주기별로 치료해주기 위해 ‘어린이 트라우마 지원사업’에 나서기로 했다. 한국어린이안전재단은 1999년 경기도 화성군 씨랜드 청소년 수련원 화재로 목숨을 잃은 19명 어린이들의 부모들이 설립한 순수민간단체이자 비영리법인이다. 재단은 “성인과 달리 사건, 사고를 겪은 아이들은 사건에 대한 왜곡현상이 더욱 심할 수 있으며, 특히 부모에게 걱정을 끼치는 데 대한 죄책감 때문에 사건에 관해 언급조차 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부모나 교사가 먼저 알아주지 않으면 그 피해 정도를 알 수 없다"고 지적했다.
재단에 따르면 미국의 경우, 2000년 국회에 의해 설립된 NCTSN(National Child Traumatic Stress Network)은 아동 트라우마에 집중하고 있다. NCTSN은 조사기관, 가족들, 관계기관과 함께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중재기관으로서의 역할을 다하고 있으며, 또한 일정 수준 이상의 규모가 되는 병원은 어린이 병원과 트라우마센터를 운영해 연중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에 대한 대비를 하고 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충격적인 사건, 사고를 직접 경험하거나 목격한 후 발생하는 심리적인 불안장애로 트라우마로 인해 잇따라 나타나는 여러 가지 정신적인 증상들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은 별도의 환자 호송팀이 마련된 병원도 있을 뿐 아니라 치료 또한 의사, 간호사, 사회복지사 등 전문가들이 진행한다. 하지만 한국의 메디컬 시스템 하에서의 어린이 트라우마 치료는 그야말로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셈이다. 재단은 “트라우마 치료를 위해 충분한 시간과 자원 투입이 필요한데, 치료비용 및 의료여건 등을 고려할 때 당사자들 스스로만이 감당하기 힘든 부분이 있으므로 이에 따른 도움이 반드시 필요한 영역이다”고 말했다.
재단에 따르면 정신과 전문의와의 1회 상담비용 및 검사 비용은 시간당 5~10만 원 정도지만 의료보험 수가는 턱없이 부족한 형편이다. 우리나라에서 특정 사고 직후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를 관리하기 위해 해당 지역에 전문기관을 설치한 것은 세월호 사건 후 마련된 안산 정신건강 트라우마센터가 사실상 처음이라는 게 재단 측의 설명이다. 재단은 “정부지원 사업에 대한 불신이 팽배한 가운데 민간이 주도적으로 이끌어가는 사업 추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재단은 먼저 오는 9월 19일 오전 10시 서울 시민청 태평홀에서 ‘어린이 안전 컨퍼런스’를 열고 한국 어린이 트라우마 치료 문제를 이슈화할 예정이다. 이날 컨퍼런스는 보건복지부와 시민단체, 재난가족안전협의회, 정신의학회 등 각계각층의 전문가들이 참석한 가운데, 아동 및 청소년의 트라우마 치료의 필요성 등에 대한 주제발표 및 토론이 진행된다. 주제발표는 전 미국교육청 심리학자인 이선화 박사의 ‘아동 및 청소년의 트라우마 치료의 필요성에 대한 학술적 근거’, 정혜신 정신과 교수의 ‘트라우마 치료에 관한 현재 상황 및 실제 사례’, 박동혁 허그맘 소아청소년심리센터 대표원장 겸 아주대 심리학 겸임교수의 사례발표 등으로 마련된다. 발표자와 발표내용은 주최 측 사정에 따라 변동될 수 있다.
이어 오는 10월부터는 국내 권역 병원 등과의 협력을 통한 본격적인 어린이 트라우마 치료 지원이 진행된다. 재단은 치료 대상자를 선정하고 일대일 상담치료 및 가족 치료, 집단 치료 등을 통해 지속적인 치료에 나설 방침이다. 또한 트라우마 치료에 관한 연구와 리서치 지원 등을 통해 지속적인 연구개발을 이어나갈 계획이다.
한국어린이안전재단 고석 대표는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한 사람의 인생의 아픔은 그가 함께하는 가족만의 문제가 아닌 그들의 친구, 직장동료, 학교 모두와 연관돼 있다”며 “트라우마 치료는 충분히 나의 일이 될 수 있기에 함께 해결해야 할 부분임이 틀림없다. 드러나는 아픔만이 아닌 내적인 치유를 함께 공유하고 이슈화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함께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어린이 트라우마 지원사업’에 대한 자세한 내용 및 문의는 한국어린이안전재단 홈페이지(http://www.childsafe.or.kr) 등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정가영 기자(ky@ibaby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