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뉴스]"세월호서 홀로 살아남은 아이, 치유책 있나"

작성자
한국어린이안전재단
작성일
2014-08-27 11:21
조회
344
"세월호서 홀로 살아남은 아이, 치유책 있나"
[데스크가 만난 사람] 한국어린이안전재단 고석 대표

4월 16일, 세월호 참사의 아픔이 가시지 않고 있다. 세월호 참사는 피해자들의 희생을 넘어 국가, 사회가 국민들을 지켜주지 못한다는 불신을 확인해준 안타까운 인재다. 세월호 참사의 고통은 지금 당장만 해결한다고 될 일이아니다. 자식, 가족, 친구를 잃은 사람들, 겨우 목숨을 건진 사람들은 평생을 고통 속에 살아가야 한다. 특히 어른보다 살아갈 날이 더 많은 아이들의 경우 극심한 고통과 후유증을 견뎌내야 한다. 씨랜드 화재 참사, 대구지하철 참사, 태안 해병대캠프 참사 등의 재난, 재해, 사고를 겪은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얘기다.
최근 한국어린이안전재단은 재난, 재해, 사고로 인해 극심한 트라우마를 겪는 어린이들을 지원하기 위한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이 사업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이는 바로 고석 한국어린이안전재단 대표다. 그는 1999년 씨랜드 화재 참사로 당시 여섯 살이었던 쌍둥이 자식을 잃은 피해자 가족이다. 이 세상의 어린이들이 다시는 똑같은 아픔을 겪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 재단을 세우고 어린이 안전을 지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고석 대표를 지난 19일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베이비뉴스 사옥에 초청해 만났다.


[대담 진행 = 소장섭 편집국장]

-한국어린이안전재단은 1999년 화성에서 발생한 씨랜드 화재 참사를 계기로 만들어졌다고 들었다. 먼저 간략하게 소개 부탁드린다.
“1999년 씨랜드 화재 참사로 서울 송파구 문정동 소망유치원생 18명, 부천의 이월드 학원생 1명을 포함해 총 23명이 목숨을 잃었다. 당시 6살이던 쌍둥이 딸도 사고가 났다. 쌍둥이 딸들은 같은 유치원, 같은 반으로 항상 손잡고 다니고 그날도 같은 방에서 잤는데, 그 방에서 잔 18명의 아이들이 전부 희생됐다.
당시 화재원인이나 시신 확인 등 수습하는 과정에 대해 유족들은 받아들일 수 없었지만 당초 유족들 의지와는 상관없이 사고 결론이 났다. 유족들은 ‘이렇게 끝낼 수 없다. 시간을 두고 화재 원인을 규명해보는 차원으로 단체를 만들자’는 입장이었다. 이에 유족들은 피해보상금 일부를 다 출연했고, 유족 변호인단도 수익료 전액을 기부했다. 2000년 ‘씨랜드 천사의 손 어린이안전재단’으로 출범했으며, 지금의 ‘한국어린이안전재단’으로 명칭을 바꿨다.
한국어린이안전재단을 만든 목표는 하나였다. 씨랜드 화재 참사와 같은 일로 어린 생명들이 희생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마침 서울시가 사고 당사 지역은 아니었지만, 희생자가 대부분 어린 유치원생이었기 때문에 예산을 들여 서울 송파공원에 추모공원을 만들겠다고 했다. 추모공원보다는 교육의 장으로 만드는 게 낫겠다는 생각에 현재의 어린이안전공원이 생겼고 안전체험 교육장 등이 들어서게 됐다. 한국어린이안전재단은 어린이 안전사고 예방활동을 주 타깃으로 카시트 무상 대여와 보급사업, 찾아가는 어린이 안전 체험교실, 어린이 안전용품과 관련된 연구 활동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14년 동안 한국어린이안전재단이 많은 일을 해왔는데, 잘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서 핵심 사업을 소개해 달라.
“가장 큰 핵심 사업은 딱 두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첫 번째는 어린이 안전교육관을 운영하는 것이다. 어린이들이 스스로 위험상황에 닥쳤을 때를 가정해 체험하면서 예방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인데, 여러 사정상 찾아오지 못하는 시설이나 기관에 대해서는 직접 찾아가서 안전교육을 시키는 이동안전체험교실도 운영하고 있다.
통계적으로 볼 때 만 14세미만 아동들이 가장 사망사고가 많은 게 교통사고다. 그리고 익사, 추락, 화재 등인데, 어린이 안전교육관을 통해 화재 안전 예방이나 추락방지, 가정 내 일어나는 손상 사고 등에 대한 교육을 진행하며, 차량을 이용한 교육도 가능하다.
이와 함께 역점을 뒀던 핵심사업이 카시트 무상보급사업이다. 우리나라 카시트 착용률은 OECD 중 최저 수준으로 다른 선진국에 비해 뒤떨어져 있다. 카시트 착용률을 끌어올리기 위해 2004년부터 교통안전공단과 카시트 무상대여사업을 시작했고, 현재는 카시트 무상보급사업을 하고 있다.”
-어린이 안전교육, 특히 찾아가는 안전교육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서울시는 광나루·보라매 시민안전체험관을 운영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80여개의 교통공원이 운영되고 있다. 이런 곳에 유치원생이 와서 교통안전 교육을 받고 있으며, 서울시 시민안전체험관에서는 지진체험이나 화재체험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곳들에 접근하기 어려운 시설에 대해서도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하기 때문에 완벽하진 못해도 비슷하게끔 버스나 트럭에 안전체험 시설을 장착해서 시설로 직접 찾아가고 있다. 서울시에서는 600여개 초등학교를 찾아다니고 있으며 유치원, 어린이집도 찾아가고 있다. 찾아가는 안전교육을 전국적으로 확대하기 위해 현대자동차나 기아자동차에서 제공하는 버스를 이용해 교통안전 교육을 시켜주는 시스템도 마련돼 있다.
이렇게 안전교육을 받는 어린이들이 1년에 6만 여명이며 만 6세 미만의 어린이가 대부분이다. 4월 16일 세월호 참사가 터진 이후로는 아이와 함께 참여하는 부모들이 늘었다. 특히 안전교육의 경우 평일에는 단체교육을 주로 하고 주말에는 개인 교육을 하고 있는데, 주말에 부모 손을 잡고 오는 아이들이 꽤 많다.
수도권 지역의 아이들은 이런 안전교육을 받을 기회가 많지만, 지방의 군, 면단위 지역에서는 교육받을 기회조차 없다. 그래서 안전행정부와 직접 협약을 맺고 1박 2일 동안 방문해 진행하기도 하는데, 이 인원도 연간 6만 명 정도다. 전기 안전체험이나 가스·소방안전체험, 심폐소생술 체험, 식품안전체험 등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주로 어린이에 대한 교육을 하는 것 같다. 하지만 화재나 교통사고는 사실 부모들의 부주의나 어른들의 부주의로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결국에는 아이들보다는 어른들이 더 많은 안전교육을 받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되는데….
“아이들에 대한 안전교육은 학교에서 의무교육으로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부모들은 교육받을 기회가 굉장히 적다. 카시트의 경우, 카시트를 장착했을 때는 안했을 때보다 사고나 부상 위험률을 71%까지 낮출 수 있지만, 카시트가 있는데도 장착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또한 카시트 설명서에 카시트 장착에 대해 나와 있음에도 설명서를 보기 귀찮다고 사용자 마음대로 카시트를 장착하는데, 이는 결코 안전하지 않다. 하지만 이런 안전에 대한 부분들을 교육하는 기회는 지금으로선 아주 적다. 안전에 대해 무지한 부모들로 인해 교통사고가 발생하기도 한다. 순전히 부모의 책임인 것이다.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서는 부모와 아이가 함께 받을 수 있는 프로그램도 진행된다고는 해도 부모들이 안전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충분히 있어야 한다. 특히 젊은 아빠들은 민방위 교육을 받는데, 이런 교육들이 과거의 교육이 아닌, 최신 교육으로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세월호 참사 이야기를 해보자. 세월호 참사가 우리 사회에 많은 과제를 던져줬다. 어른들의 잘못으로 아이들이 죽었다.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우리 정부와 사회가 가장 반성해야 할 부분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일각에서는 세월호 참사가 우리 사회 안전불감증이 빚어낸 참사라고 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안전불감증을 뛰어넘었다. 세월호라는 배는 출항해선 안 될 배였다. 당장 눈앞의 이익만을 위하는 해운사들의 부패, 그걸 제대로 감독해야 함에도 묵인한 관계기관들이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교통사고라고 운운하지만 사고 수습과정에서 충분히 구할 시간적인 여유가 있었고 충분히 탈출할 수 있었음에도 나만 살고 보겠다는 이기주의 등 복합적인 사항들이 불러낸, 우리 사회가 만든 살인인 것 같아 안타깝다. 부패 권력이, 서로 자신의 이익만을 위하는 만행이 누적돼 벌어진 결과다.
사실 씨랜드 참사 이후 여러 사고들이 많이 있었지만 나서지도, 도와주지도 못하고 지냈었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는 도저히 보고만 있을 수는 없겠다 싶었다. 그래서 현재는 세월호 희생 가족들에게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고자 재난, 사고를 당한 가족들과 함께 지난 8월 12일 재난안전가족협의회를 결성한 상황이다. 재난안전가족협의회에는 씨랜드 참사와 태안 사설해병대캠프 참사, 대구지하철 화재 등의 참사로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 참여하고 있다.”
-이제는 이런 일들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게 우리의 과제인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세월호 특별법에 대해 모든 사회가 관심을 갖고 이야기 하고 있는 중이다. 세월호 특별법 외에 어린이안전재단이 준비하는 내용이 있는 걸로 알고 있다. 어린이 트라우마 지원사업을 구상하고 있으며 오는 9월 19일 컨퍼런스를 개최한다고 들었다. 이번 컨퍼런스를 개최하게 된 배경이 궁금하다.
“세월호 참사 때 가족들 중 아이만 살아남은 경우가 있다. 5살 아이, 8살 아이가 홀로 남았다. 세월호 참사로 엄마, 아빠, 형을 모두 잃은 8살 아이를 알게 됐고 아이의 외삼촌을 만나봤는데, 아이가 초등학생이니 가족의 죽음에 대한 반응도 없고 그저 해맑게 지내고 있다고 하더라. 그저 친척, 형제가 많아서 신이 나는지 천진난만한 모습이라고 한다. 앞으로 그 아이의 정신적인 고통은 불 보듯 뻔한데, 저 아이들을 누가 보살펴줄까. 저 아이가 겪는 고통을 누가 치유해줄 것인가. 친권자? 후견자? 아니면 우리 사회? 누가 해줄 것인가. 재난, 재해 사고를 겪은 아이들이 겪어야 하는 트라우마를 어떻게 치료해줄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됐다.
15년 전 씨랜드 참사 때 살아남은 내 딸의 친구도 이제 대학교 4학년인데, 어려움이 많다고 한다. 아직도 집안에서 연기가 나거나 탄 냄새가 나며 말할 수 없는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살아있는 자의 고통이다. 과연 이들을 방치할 것인지, 이 부분에 대한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트라우마 문제에 대해 무관심하다. 미국 전문가들은 한국사회에서는 트라우마로 고통 받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를 방치했다가는 사회적 비용을 치를 것이라고,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트라우마 문제는 어느 한 개인의 책임으로만 돌릴 수 없다. 이 트라우마 문제에 대해 누군가는 얘기를 꺼내야하며, 우리 사회, 우리 정부가 함께 고민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조심스럽게 트라우마 지원사업을 추진하기로 했다.”
-몇 십 년이 갈 수도, 평생을 갈 수도 있는 아이들의 트라우마 치료가 전혀 되지 못하고 방치되는 현실을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까. 컨퍼런스가 어떻게 펼쳐질지 궁금하다.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는 트라우마 이야기가 거론된 적이 없었다. 본격적으로 거론된 게 세월호 참사였다. 삼풍백화점 붕괴, 성수대교 붕괴, 씨랜드 화재 참사까지 사건, 사고가 쭉 발생했지만 심리치료라든지 이런 부분은 사회적으로 이슈가 제기된 적이 없었다. 이 사건, 사고들로 피해를 입은 아이들이 분명 있을 텐데, 이 아이들을 방치하는 건 정말 심각한 사회문제다.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교통사고를 넘어섰다. 딱 꼬집어서 말할 수는 없지만 이런 트라우마 문제가 (자살의) 한 원인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걱정된다. 성인에 대한 트라우마 치료도 중요하지만 자라나는 어린이에 대해서는 사회가 보다 더 심도 있게 고민해야 하고, 이 트라우마 문제를 수면 위로 올려서 좀 더 연구하고 투자해야 한다.
컨퍼런스에서는 이런 트라우마 문제에 대해 계속해서 공부하고 연구하던 분들이 나온다. 우리 사회에서 이런 지원은 꼭 필요하다는 내용의 주제 발표들이 이어질 예정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재난사고가 많았기 때문에 분명 케이스가 있을 것이다. 이 분야에 대한 연구를 지속하면 다른 나라보다 좀 더 앞서가지 않겠느냐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트라우마 문제를 짚어보는 것, 이는 우리나라가 향후 건강한 사회로 가기 위한 작은 발걸음이다.”



-컨퍼런스를 계기로 우리 사회가 어린이 트라우마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길 바란다. 재단에서는 앞으로 어린이 트라우마 지원사업을 어떻게 펼쳐갈 계획인가.
“우리사회가 트라우마 문제에 관심가질 수 있도록 다양한 방법으로 기금을 마련해, 경제적인 이유로 트라우마 치료를 받지 못하는 어린이를 지원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우리나라 아동 복지 정책이 못 먹고, 못 입는 아동들을 대상으로 하는, 과거에 얽매인 지원으로 이뤄졌다면 이제는 시대가 많이 바뀌었기 때문에 아동들에 대한 정신적인 안전도 복지차원으로 생각할 때가 됐다. 이런 움직임에 기업들이 많이 참여해서 우리나라 아동 복지 정책 방향을 바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사실 정부나 관련 지자체는 국회 법이 통과되지 않았다. 예산이 편성되지 않았다는 여러 가지 이유로 이런 지원을 늦게 시작하는데, 재단과 같은 민간단체는 기금이 모이면 바로 첫 발을 내딛을 수 있다. 어린이 트라우마 지원사업이 잘 되고 참여하는 분위기가 조성되면 재단 독자적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정부의 한 정책으로 수립해 민·관 협력으로 가도 좋을 것이다.”
-큰 사건을 떠나서 아동학대 문제나 성추행 문제 등이 많이 있는데, 그런 아이들까지 보듬어서 이번 사업을 잘 진행하길 바란다. 어린이 트라우마 지원사업을 꾸려나가려면 펀드 조성 등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이 있을 것 같다. 정부와 기업의 관심이 필요한 시점인 것 같은데 어떻게 바라보는가.
“사람의 인식이나 사회 분위기를 바꾸는 것은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야 되는 것 같다. ‘어린이 트라우마’라는 화두를 던졌을 때 ‘그런 것도 있어?’라는 반응이 있다. 우리나라 기부 문화가 아직까지 저소득층이나 소외된 지역 등 결과가 보이는 부분들에만 치중돼 있다 보니, 언제 결과가 나올지 모르는 부분들에 대한 관심은 적다. 하지만 기업들이 참여하면 분명 기업의 홍보 효과도 있을 거라고 확신한다. 이번 기회를 계기로 눈에 바로 드러나지 않는 지원에 대해서도 관심 가져주길 바란다.”
-이번 인터뷰를 통해 좋은 뜻에 동참하는 기업이 늘었으면 좋겠다. 기업들이 사회적 책임을 할 수 있는 계기로 삼길 바란다. 한국어린이안전재단이 이번 사업을 준비하는 것을 보면 뭔가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는 것 같다. 향후 한국어린이안전재단의 포부를 밝혀주시기 바란다.
“처음에는 어린이 안전사고 예방 활동을 목표로 만 14세 미만 아이들의 교통사고, 추락, 익사, 화재 등 물리적인 안전에 신경을 많이 썼다. 물론 이런 부분은 굉장히 중요하다. 하지만 이제는 우리 아이들의 정신적인 안전이나 건강에도 신경을 써야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다.
예를 들어 사건, 사고로 인한 어린이 트라우마뿐 아니라 화상으로 고통 받은 어린이들이 많이 있다. 화상을 입은 어린이들은 외관상으로 볼 때 혐오적으로 비춰질까 하는 마음에 정신적인 고통도 받는데, 이런 어린이들의 고통까지도 돌아보려고 한다. 아이들의 물리적인 안전을 넘어 정신적인 안전까지 예방하고 치유할 수 있도록 앞장설 것이다.”


정가영 기자(ky@ibab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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